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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1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 소설로 번안 (3)

우려먹기의 지존!
어쩔 수 없다. 내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걸 쓰자면 이 얘기밖에 없다.
지나번보다 심각한 기억의 짬뽕!
본인들에게 허락받지 않고 그대로 빌어다 쓴 심각한 명의 도용! (그래봤자 세명임 쌤과 얼간이들)
극심한 뻥들!

아아 그만큼 난 급했다.
단 한번도 소설을 써 본일 없는 내가 열흘만에 단편을 만들어 내자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프린트 하고 다시 읽어보니 오탈자와 비문이 조금 눈에 띈다. 하지만
고치기 귀찮다. 난 밤샜다;
다시뽑기 아깝다. 잉크 아깝다.
문창과 친구들이 얼마나 후덜덜하게 지적을 해 줄지 두고보자는 심경으로 그냥 내자 ㅋㅋㅋ
아 막 감동해서 타과생이 이렇게 쓰다니 막 이러면서 똥줄 타는거 아냐 -.- ?!

아니겠지...

쪽팔리고 창피하고 허접스럽고 뻥스럽지만 그래도 올려놔 본다. 어차피 길어서 안읽을거 다 알어 -.-

아, 그리고

수차례 제목을 빌어다 쓰게 되어 미스티블루 에게 죄송합니다 ㅠㅜ

끙...

내 창의력이 뭐 이렇지.. 아무튼... 쩝쩝쩝...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

놀이터
  이래서 내가 봄, 가을을 싫어한다. 특히 늦가을의 따가운 햇볕과 찬 기운이 섞일 때가 제일 싫다.
  계절에 이르게 두터운 웃옷 때문에 걸음을 하나씩 옮길 때 마다 등에서 땀이 찔끔 배어나온다. 이내 찬바람에 땀이 식으면 온 등의 땀구멍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이 따끔거린다. 걸음을 걸을 수록 땀은 맺혔다 식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따끔거림이 가시고 어깻죽지를 스쳐 겨드랑 밑으로 견딜만한 한기가 파고든다.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지긋이 물어 한기를 씹는다. 거르는 구름 하나 없어 마구 쏘아대는 볕은 내 미간을 구긴다.
  언덕은 길고 완만하다. 나는 기타 케이스를 들고 걷는다. 손잡이를 쥔 손이 벌겋다 못해 허옇게 된다. 기타 케이스의 중량이 손바닥을 짓누른다. 못 견디겠다 싶을 때 마다 손을 바꾸어 든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분주하게 바꾸어 든다. 손을 바꾸어 들 때 마다 손잡이 때문에 막혀있던 피가 손바닥에서 손가락으로 흐르면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얼얼하다. 얼얼한 게 빠지라고 손을 탁 탁 털며, 홍대 입구 역에서 놀이터까지 꽤나 긴 언덕을 걸어 올라왔다.
  '역시 기타 같은걸 팔러 나온 사람은 없군.'
  예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면 홍대 앞 놀이터에는 장이 선다. 누가 언제부터 이곳에 장을 세우기 시작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물건을 팔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고, 물건을 사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날이 너무 찬 계절이 아니면 토요일마다 장이 서고 젊은이들이 물건을 내다 파는 것이 이 근방의 문화가 되었다. 직접 만든 옷가지나 장신구, 오래된 물건, 음반 따위를 사고파는 일이 이제는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놀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 도착하자 마자 내가 끼어들 틈은 없는 것 같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기타 케이스를 든 채 잠시 동안을 멍하니 서있었다. 이곳은 마지막이 되기에는 왜인지 적절하지 않은 곳 같았으니까. 걸음이 가볍고 시선이 자유로운 젊은이들 틈에서, 그들이 서로의 문화를 사고팔며 놀이하는 공간에서, 녀석과 나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나는 이곳에 기타를 팔러 왔다. 내게 남은 마지막 악기. 딱히 이름을 붙여준 적 없지만 언제나 '녀석' 이라고 불렀던 이 녀석과 이별하기 위해서.

멜로디
  또 한 장을 찢어 버린다. 도대체 지금까지 찢어버린 페이지가 얼마나 될까. 처음 살 때엔 제법 두꺼웠던 노트가 이제는 스프링만 앙상하다. 표지 사이에 남은 페이지는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열장이 채 안될 것 같다. 쓰던 페이지를 찢어버리면 빈 오선지가 다시 나를 맞이한다. 이제는 오선이 철창 같아 보인다.
  나의 반 지하 자취방에는 악기가 가득 차 있다. 싸구려 전자 피아노, 칠이 벗겨진 통기타 한 대, 베이스 기타 한 대, 전자 기타 한 대가 전부지만 좁은 방은 이것들로 가득 찬다. 제대 하며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한 악기들이다. 벽에는 드문드문 밴드의 포스터 따위가 붙어있다. 책상 위의 오래된 스피커 한조는 큰아버지께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며 사온 미제다. 아버지가 선물로 받아서 쓰던 것을 대학에 붙어 분가할 때 들고 왔다. 그 때 엄마는 그 조그만 방에서 뭘 또 그렇게 들을 셈이냐며 화를 냈었다. 이 스피커 한조가 아마 내방에서 제일 값나가는 물건일 것이다. 이 작은 방에 처박혀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들겠다고 부산 피우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취미이자 일상이다.
  군대에 다녀오고 스물다섯이 될 때 까지도 내가 완성 시킨 곡은 몇 곡 안되었다. 그마저도 다 만들어놓고 들어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그저 미완성인 멜로디들을 붙잡고 씨름 해 오기만을 반복했다. 그동안 버려진 멜로디는 얼마나 될까. 내가 그리는 멜로디는 늘 서너 마디를 넘기지 못하고 힘을 잃은 채 고꾸라졌다. 책상위에 놓인 전자 피아노의 건반을 눌러가며 하나씩 쌓아간 음표는 한 소절에도 닿지 못하고 무너졌다. 애써 음표를 합쳐 화음을 쌓으면 이내 다음 화음이 불협의 소리를 뱉어냈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못한 채, 멜로디를 쓴 나조차 한번 흥얼거려주지 않은 채, 내가 낳은 멜로디는 이렇게 태어나자 마자 죽어나갔다.
  다음 장의 새 오선지를 펴면 이미 버려진 멜로디와 비슷한 멜로디가 다시 음표와 화음을 힘겹게 꾸려나가다가 엎어져버리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여태껏 버려진 멜로디를 주워 모아 짜깁기를 하면 제법 그럴듯한 한 곡이 나올지도 모른다. 파헬벨이 캐논을 지을 때, 그럴듯한 멜로디가 담긴 마디를 뿌려놓고는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씩 골라 곡을 잇고 붙여서 곡을 완성한 것처럼.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서만 희미하게 맴도는 그 멜로디를 잡아다 악보에 담아내지 못한 채 시간만 축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밴드가 깨진지도 1년째다.

록 키드
  나는 사춘기를 지나며 록 음악에 사로잡혔다. 길게 기른 머리, 몸에 붙는 가죽옷, 한껏 높여 부르는 고음의 노래, 귀청이 떠나가도록 시끄러운 기타 소리에 빠져든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싫어서 록 음악을 멀리하던 편이었다. 나는 나긋나긋하고 조용조용한 음악을 좋아했다. 듣는 음악도 주로 영화음악이나 연주음악 따위였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라디오를 통해 우연히 들은 노래 한곡이 내 취향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습관처럼 라디오의 주파수 선택 버튼을 위 아래로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귀에 걸린 소리에 일순간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섬을 느꼈다. 장엄한 관현악 연주와 육중한 전자 기타 소리가 어우러져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 휩쓸려왔다. 영어로 된 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전달되어 오는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날 때 까지 나는 마네킹처럼 굳어 꼼짝 않고 온몸으로 음악을 들었다.
  잊지 않고 밴드와 곡명을 받아 적었다. 몇 푼 들어있지 않은 돼지저금통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는 다음날 학교 앞 음반점에서 주저 않고 시디를 샀다. 메탈리카와  샘프란시스코 심포니의 협연 실황이었다. 이렇게 록 키드로서의 인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음악을 끼고 살았다. 라디오의 주파수는 주한 미군 방송에 고정되어 있었다. 록 음악에 빠진 록 키드들에게 주한 미군의 라디오 방송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록 음악의 고전부터 최신의 록 음악까지, 틀어주지 않는 장르가 없었다. 처음 듣는 노래가 소개 될 때마다 형편없는 영어 듣기 실력으로 밴드 이름과 곡명을 받아 적느라 애먹었다.
  언제나 소형 시디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음악을 들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저녁을 사 먹으라고 주신 용돈을 모아 시디를 샀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배고픔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자습시간에 몰래 음악을 듣다가 플레이어를 빼앗긴 적도 많았다. 교무실로 찾아가 벌을 서거나 매를 맞으면서도 플레이어를 되돌려 받고 음악을 들을 생각을 하며 흐뭇해했다.
  나는 점차 어떻게 해야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들을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1. 내가 메탈리카나 비틀즈를 능가하는 천재적 록 스타가 되는 것.
  2. 메탈리카나 비틀즈를 능가할 수 없다면 비틀즈에 버금가는 록 스타가 되는 것.
  3. 메탈리카나 비틀즈에 버금가는 록 스타가 될 수 없다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내가 라디오에 흐르던 음악을 듣고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게 되어 음악을 통해 얻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1번과 2번은 실현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 나는 3번의 결론을 선택했다. 바닥을 기던 성적이 오르기 시작한건 이 무렵부터다.
  덕분에 나는 목표한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는 라디오 록 키드에서 벗어나 진정한 록 키드가 되고자 단과대학의 음악동아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사춘기를 지내온 친구들을 만났다. 미군 방송을 끼고 새벽을 지새며 살아온 록 키드 놈들을 만난 것이었다.
  한열이와 상현이. 우리는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내다 마침내 다시 만난 형제들처럼 서로를 반가워했다. 다른 동기들, 선배들도 좋았지만 우리 셋은 유난히 죽이 잘 맞았다. 좋아하는 밴드가 'Red hot chili peppers'와 'AC/DC'라는 공통점을 발견 했을 때에는 잔이 깨지도록 신나게 맥주잔을 맞부딪쳤다.
  신청곡을 틀어주는 맥주 집을 찾아가 쪽지에 듣고 싶은 음악을 잔뜩 적어내고는 서로가 아는 음악이 나올 때 마다 환호성을 질러댔다. 알지도 못하는 가사를 억지로 지어내며 끝까지 따라 불렀다.
  벚꽃이 필 무렵이 되서는 각자 그동안 모은 쌈짓돈으로 악기를 샀다. 상현이는 기타를, 한열이는 베이스 기타를 샀다. 나는 드럼 스틱과 중고 기타를 샀다. 우리 셋 만으로도 록 밴드의 구성이 갖춰진다는데 우리는 대단히 고무되었다. 상현이가 악기를 사던 날에는 학교에서부터 꽤 먼 거리인 종로의 악기상가까지, 그리고 다시 종로에서 학교 앞 술집까지 셋이서 행진을 했다.
  우리는 악보도 볼 줄 몰라 선배들이 보여주는 연주의 손 모양과 움직임을 보며 연습했고, 오월이 되서는 선배들 틈에 끼어 첫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상현이는 제가 맡은 기타 솔로 연주 부분을 틀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셋은 연거푸 소주를 들이키고는 함께 나가 토악질을 하고, 휘청거리며 또 어딘가로 행진했다. 그 무렵부터 선배들은 우리 셋을 싸잡아 '얼간이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는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악기 연습을 하던 녀석들이 셋이서 모였다 하면 얼간한 짓들을 일삼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연필심
  책상 위에는 맥주 캔들이 놓여있다. 그 중 몇 개는 찌그러진 채다. 몇 시간 째 책상 앞에 앉아 오선지와 씨름하고 있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툭."
  음표의 머리를 칠하던 연필의 끝이 부러져 나갔다. 이렇게 또 마무리 되지 못한 멜로디가 쓰레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한숨을 내쉬며 맥주 캔을 집어 들자, 캔 바닥에 고인 약간의 맥주가 찰랑 하는 느낌만이 손끝에 전달되어왔다. 순간 텅 비어버린 맥주 캔처럼, 머릿속에서 맴돌던 멜로디가 사라졌다. 고요함이 내 주변을 엄습했다. 내 몸을 둘러싼 공기가 흐름을 멈추고 아주 서서히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탁."
  맥주 캔을 내려놓고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급히 캔을 따고 한 모금 들이켰다. 냉동실 문짝에 자석으로 붙여놓은 사진 한 장에 눈이 마주친다.
  한열이와 상현이와 내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손에는 악기를 하나씩 들었다.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반 지하 자취방에서 나는 한동안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
  상현이는 목소리를 죽여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도서관."
  "쉬엄쉬엄 해라, 옥상으로 나와."
  "그래. 아, 음료수나 사와라."
  자취방에서 학교까지는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토요일 저녁인데도 녀석은 도서관에서 공부중이다. 우리는 군대에 가기 전 곧잘 옥상에 올라가 맥주를 나눠 마셨다. 낮 시간에는 학생들이 제법 많이 올라와 쉬었지만 해가 떨어지고 나면 아무도 찾지 않았다. 해 진 뒤 옥상은 우리 차지였다.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음악 얘기를 하고, 인생을 논하고, 여자를 논했다. 입에는 맥주를 한 캔씩 문 채였다.
  "공부 잘 되냐?"
  "그냥 그렇지 뭐, 에휴……. 넌 어때? 곡은 좀 써지냐?"
  "아니……."
  "새끼, 그러게 뭘 그렇게 붙들고 있어……."
  "그러게……."
  난간에 기댄 채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야, 별일 없으면 한열이 불러서 술이나 먹자. 한열이도 도서관에 있어."
  우리는 즐겨 찾던 맥주 집에 갔다. 함께 밴드 하던 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웃고 떠들고 마셨다. 셋 다 거나하게 취했을 때 한열이는 내게 큰 소리로 무언가 말했다. 나는 흥분해서 한열이 멱살을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상현이는 계속 둘을 뜯어 말리느라 애썼던 것 같다. 술에 취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열이가 내게 부르짖던 한마디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제발……."

  한번쯤은 데시벨을 측정 해 보고 싶다. 어째서 내게는 휴대폰 벨소리보다 진동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것일까.
  휴대폰의 진동음에 잠이 깼다. 엄마다.
  "네 엄마."
  "지금 일어났니? 지금이 몇 신데……."
  "일요일이잖아요."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이라도 가고 그래야지."
  엄마가 언성을 높인다.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거니? 이제 너도 정신 차리고 공부 해야지. 엄마는 너만 보고 사는 거야……."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라구요."
  "그래, 아들……. 얼른 일어나서 밥 챙겨먹구."
  "네."

  일요일은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이다. 제대 후 집에서 곡을 쓰고, 더러는 혼자 녹음을 조금씩 하게 되면서 필요한 장비를 사 모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학주형을 만났다. 나는 학주형이 신촌에서 운영하고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음 일을 돕고 있다. 말이 좋아 스튜디오지 사실은 내 방보다 조금 넓고, 내 장비며 악기들보다 갖춰둔 종류가 조금 더 많고, 조금 더 더러운, 겨우 구색만 갖춘 녹음실이다. 급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게는 일 하러 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쉬러 가는 곳이기에 별 상관없다. 어제의 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채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갔다.
  "형, 저 왔어요."
  "왜 이렇게 늦어."
  "어제 술을 좀 마셔가지고……."
  "작작좀 마셔라."
  학주형은 믹싱 프로그램이 실행중인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작작 마시라고 말하고 있지만 형은 대낮부터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녹음은요?"
  "오늘도 없어, 요새 통 녹음 하려는 애들이 없네."
  "오늘도 없어요? 휴……. 그럼 정리나 하다 갈게요."
  "그래."
  녹음 부스 안에는 악기들, 케이블들, 마이크들, 마이크 스탠드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천장에 달려있던 전구 두 개 중 하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져 가뜩이나 어두운 부스가 더 어두웠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기타를 들어다 스탠드에 세워놓고, 마이크를 스탠드에 끼우고, 케이블을 둥그렇게 감아 벽에 걸었다.
  부스와 조정실 사이의 유리창으로 학주형의 얼굴이 보인다. 형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초췌해진 모습이다. 처음 만났을 때 형은 아는 사람으로부터 작은 스튜디오를 인수해 운영하게 되었다며 희망에 차 있었다. 학주형은 내게 기본적인 장비들과 그것들의 사용 방법을 알려줬다. 내가 어느 정도 능숙해지자 함께 일하자며 주말 일자리를 내주었다.
  스튜디오 정리를 끝내고 형에게 가겠다는 인사를 하자 형이 말했다.
  "이제부터 일 있을 때에만 연락할 테니까 다른 아르바이트 찾아보든가 하자. 미안해."
  벌써 몇 주째 작업이 들어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대답 하는 것뿐이었다.
  "미안하긴요, 괜찮아요."
  그런데, 뭐가 괜찮다는 걸까 나는…….

얼젼스
  우리는 셋의 휴가날짜를 맞추기 위해 휴가 나가기 석 달 전부터 편지를 주고받으며 약속을 정했다. 군대에서는 특별한 작업이 생기거나 사건이 터지면 병사들의 휴가 일정이 마구 뒤바뀌곤 했다. 우리는 서로의 부대에 별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우리 셋 모두 예정된 날짜에 휴가를 나가게 되어 1년 만에 셋이 모일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나자 마자 단골인 신촌의 맥주 집으로 갔다. 지하의 음침한 술집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 어둡고 습한 벽이 더 아늑하게 다가왔다. 벽은 세월의 흔적을 타 누렇게 바랬고 곳곳에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는 Red hot chilli peppers를 신청해 듣고 따라 불렀다. AC/DC의 'Highway to hell'이 나올 때엔 가득 찬 500cc 맥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군대 가기 전에 가게 우리가 벽에 해 놓은 낙서를 찾고, 또 다른 낙서를 남겼다. 우리의 첫 공연 때 상현이가 틀렸다며 눈물을 흘린 Blur의 Song2를 들으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우리의 밴드 이름을 정했다.
  "야 우리 제대하면 밴드 해야지."
  한열이가 운을 땠다.
  "당연하지, 그럼 너는 안하려고 그랬냐?"
  상현이가 킬킬거리며 거들었다.
  "그런데 이름은 뭘로 하지?"
  "그러게 뭐 좋은 거 없을까?"
  둘은 이마를 맞대고 고민했다. 나도 맥주잔을 기울이며 생각에 빠졌다. 좋은 이름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얼젼스!"
  "얼젼스?"
  "그래, 얼젼스!"
  "괜찮은데? 야, 괜찮다!"
  얼젼스. 사전에도 없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얼간이들'의 말도 안 되는 영어 발음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밴드 이름이자, 최고의 밴드 이름이었다. 상현이와 한열이 모두 얼젼스라는 이름에 열광했다. 1년이 더 지나고, 모두 제대하게 되면, 함께 최고로 얼간한 밴드를 하자며 건배를 했다. 우리의 이름이 낙서되어 있는 벽에 얼젼스라고 크게 적었다.
  그날도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신촌 바닥을 행진했다.

첫 만남
  복귀 이후로 나는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타를 사기 위해서였다. 얼젼스 에서는 드럼을 연주하지만 얼젼스를 위한, 얼젼스만의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타가 필요했다. 리듬 악기만을 가지고 곡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처음 밴드를 시작 할 때 장만한 싸구려 중고 기타보다 쓸 만한 악기가 필요했다. 애초부터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을 하는 일로 평생을 먹고 살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앞으로 이어갈 멋진 취미를 위해, 그에 어울리는 악기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개월간 월급을 모았다. 냉동 만두를 사먹지 못하는 일 따위는 문제될게 없었다.
  입대 전 모아둔 약간의 돈을 기타 구입 자금에 더했다. 그렇게 쓸 만한 기타를 구할 자금 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제대 할 무렵이었다. 상현이와 한열이의 제대는 아직 넉 달 정도 남아있었다.
  민간인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기타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새것을 사자니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어 중고 제품을 사기로 했다. 기타 연주자 커뮤니티의 중고장터에 며칠간 붙어살며 물건들을 구경했다. 악기는 새것을 사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이 잘 길들여 놓은 것을 구입하면 자금도 아끼고 연주도 편히 할 수 있어 중고를 사는 것이 현명하다.
  판매자는 천안에 살았다. 기타에 관심이 생겨 새 기타를 샀는데 생각처럼 재미있지 않아서 판매한다고 했다. 천안까지는 전철을 타고 두 시간이 걸렸다. 군에 있을 때 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흘렀다. 두 시간이 네 시간 같았다. 판매자는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손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당연하다. 손이 적응하기까지는 못해도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
  "아무튼 좀 보죠."
  역 앞 광장 바닥에 케이스를 내렸다. 보통은 배낭과 같이 등에 메는 소프트 케이스를 쓰는데 판매자가 들고 온 케이스는 나무로 짜고, 무늬 있는 천을 덧대어 만든 것이었다. 케이스의 걸쇠는 안쪽에 스프링이 달려 있어 여는 버튼을 누르자 척 소리를 내며 펼쳐졌다. 홍콩 느와르에서 돈 가방을 주고받을 때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열 때 들리는 그 소리였다. 서서히 케이스를 열었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타의 모습. 익숙한 모양의 펜더 텔레캐스터. 붉은 벨벳으로 된 안감과 확연한 대비를 이루는 노란색 바디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와, 좋은데요!"
  "새거니까요, 산지 정말 얼마 안됐어요."
  판매자는 뒷짐을 지고 기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기타와 판매자를 번갈아 보며 마음속으로 기타를 향해 말을 했다. 물론 들을 리는 없지만.
  '저 사람 보다 훌륭한 주인이 되어 줄게.'
  녀석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좀 쳐봐도 되겠죠?"
  "그럼요."
  아더 왕이 바위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아 올릴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기타를 들어올리기 위해 넥을 잡는 순간부터 이 기타와 나 사이에 미리 정해진 연(煙) 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타를 들어 올려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린 모습처럼 겨누어 보았다. 넥이 휘지 않고 곧은데다가 지판의 굴곡이 적당했다. 두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 손에 꽉 차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들어오는 것이 맞춤 제작 한 것 같이 마음에 쏙 들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고등학교 때 읽은 '방방이 깎는 노인'에 등장하는 노인의 철학이 담긴 넥이라고 해도 좋을 법했다.
  "좋아요, 구입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전자 기타이기 때문에 원래는 앰프에 연결해서 소리도 들어보고 해야겠지만 기타의 상태를 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보였다. 거의 새 제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바디에 붙은 픽가드의 비닐도 아직 벗기지 않은 물것이었다. 판매자가 처음 제시한 가격 90만원에서 2만원을 깎았다. 원래 이런 거래에서는 차비정도를 깎아주는 편이다.
  판매자와 헤어지고는 역 앞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점심때가 지나도록 밥을 먹지 못해 무척 배고팠다.
  "아저씨, 이 동네서 뭐가 제일 맛있어요?"
  "타지 분이시구만, 천안에선 회 무침을 먹고 가야지."
  "그럼 그거 잘하는 집으로 가주세요."
  나는 회 무침 잘한다는 집에서 혼자 비싼 회 무침을 잔뜩 먹었다. 내가 나에게 베푸는 제대 회식이자 이 녀석과 만난 기념이었다. 넉 달 후 얼간이 녀석들이 제대하면 여기 다시 와서 이거나 사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에게 제대 턱을 내지 못했다.

공무원
  "축하한다, 새끼들. 고생 많았어."
  내가 킬킬대며 말했다. 녀석들은 아직도 피부가 검고 머리도 퍼렇게 짧았다. 상현이와 한열이가 제대했다.
  "으아, 내 2년을 돌려줘"
  "나도!"
  두 녀석은 같은 날 입대해서 같은 날 제대했다. 제대하고 다음 날 내 자취방에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벌였다.
  "야 이거 이번에 산 기타다"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며 녀석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와 죽이네!"
  "야 쳐보자, 쳐보자. 앰프 좀 켜봐."
  둘은 번갈아가며 기타를 쳐 보고는 욕을 섞어가며 좋다고 난리를 부렸다. 녀석들이 제대하기 전 까지 나는 약간 무리를 해서 간단한 녹음을 위한 장비도 모았다. 갓 제대한지라 부모님께서 주신 용돈이 두둑했던 터였다. 자취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들이라고 주신 돈이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컴퓨터에 설치한 오디오카드에 기타를 연결하여 녹음 되는 것을 보여줬다.
  "야, 드디어 셋 다 제대 했겠다, 밴드 해야지!"
  맥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어 그렇지, 그래야지……."
  한열이의 어조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왜, 너무 감동적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한열이는 나를 향해 돌아앉으며 말했다.
  "막상 제대하니까, 어째 불안하고 답답하다."
  "뭐가?"
  "아니, 이제 우리도 슬슬 취업준비 해야지. 너무 놀았잖아. 너 평점 잘 받아놨냐?"
  "나? 나쁜 편은 아닌데……. 그래도 이제 관리 해야지."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맘 잡고 공부해야 될 때인 것 같아서……."
  상현이는 계속 잠자고 맥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뭐 우리가 이걸로 먹고 살자고 밴드 하냐,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공부 하면서도 할 수 있잖아."
  "난 잘 모르겠다……."
  대화는 점점 격해졌다. 나는 맥주 캔을 구기며 소리를 질렀고, 한열이도 질세라 언성을 높였다.
  "정신 좀 차리라구, 우리가 몇 살이냐, 그냥 들으면서 즐기면 됐잖아."
  그 말이 맞다. 들으면서 즐기면 된다. 좋은 음악들을 함께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음악을 직업 삼을 것도 아니다. 우리에겐 그럴만한 소질도 재능도 없다. 여태까지 듣는 즐거움  만으로도 잘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렇게 이야기 하면 우리가 해온 밴드는, 앞으로 하고자 했던 밴드는, 취업 준비에 방해되고 공부하는데 방해되는, 어린 시절의 객기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한열이는 자리를 떴다. 집으로 가는 막차가 끊길 시간이었지만 녀석은 가버렸다. 상현이는 우리가 나눈 격한 대화를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어쩌겠냐, 저 녀석 생각이 저런데."
  "넌 어떤데?"
  "휴……. 난 잘 모르겠다. 근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 수는 없잖아."
  "우리가 그러자는 건 아니잖아."
  "나도 알지……. 근데 어쩌겠냐……. 밴드는 둘이서 할 수 없는거고……. 또 한대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이 마당에."
  "휴……."
  며칠 뒤 학교에서 만난 한열이는 공무원 수험서를 들고 있었다.
  "야야, 그날 그러고 나가더니 공부 한다는 게 고작 공무원이냐?"
  "인마, 공무원이 최고야. 이 자식에 뭘 잘 모르네……. 야, 근데 밥 먹었냐?"
  "어이구, 복학생 새끼. 냄새난다."
  식당으로 가며 얘기를 계속 했다. 한열이는 5급 공무원 준비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공무원이 워낙 안정적이기도 하고, 집에서도 아버지가 완강하게 고집한다 하셨다.
  "야 미안하다……. 나라고 밴드 안하고싶겠냐."
  "그래 인마, 됐어"
  킬킬거리며 식당으로 가 밥을 먹었다. 식권은 내가 샀다. 회 무침 대신에 식권을 샀다.

땡벌
  스튜디오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창밖으로는 익숙한 신촌 골목골목이 흘러갔다. 우리가 함께 행진 했던 골목도 흘러갔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들은 음악은 오래전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날 밤 들은, 그때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돼지저금통의 배를 갈라 시디를 샀던 그 밴드의 음악이었다. 골목길처럼, 음악도 창밖으로 흐르고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감동은 없다.
  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버스 안에 틀어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요란했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땡벌.'
  집에 도착한 나는 연주자 커뮤니티에 내가 가진 물건들을 매물로 등록했다.

다시 첫 만남
  "얼마나 드리면 되요?"
  "네?"
  "얼마나 드리면 되냐구요."
  한참을 놀이터 입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구석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이 마지막이 되기에 어울리지 않다면, 첫날의 회무침은 대체 얼마나 어울렸던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바닥에 케이스를 열어두고, 준비한 쪽지에 '팝니다'라고 써 붙였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내 앞을 지나가벼렸다. 그냥 앉아있기 무료해 기타를 집어 들고 연주를 했다. 기타를 잡으면 눈을 감고도 연주하게 되어버리는 내 몇 곡 안 되는 자작곡,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허접한 곡. 그런데 이 여자가 나타났다.
  "아, 이게 펜더 텔레캐스터 04년 모델인데요, 7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거든요, 넥은 메이플이고, 바디는 앨더구요, 픽업이 텍사스 빈티지라서 소리가 정말 괜찮은데……."
  "네?"
  여자가 내 설명을 끊으며 물어왔다.
  "아, 좀 비싼가요? 그럼 60정도……."
  "네?"
  "그러니까, 기타 사려고 물어보신 거 아니에요?"
  "네? 아니요……."
  "그럼요?"
  "아……. 연주 하는 거, 저쪽에서 오면서 봤어요. 영화 보면 가방에 동전 던져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아하……. 그런 거 아니에요, 저 기타 팔려고 나왔어요. 이 기타요."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면서 여자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역시 홍대 앞이라서 자유분방한 사람이 많은가보다. 그녀는 스쳐 지나며 보면 예쁘다는 걸 눈치 채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그윽하고 눈빛이 깊었다. 나이는 나 보다 두 살 정도 어린 것 같았다. 어깨에는 카메라 스트랩을 메고 있었다. 카메라는 언뜻 봐도 비싸 보이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그쪽은 사진 찍으러 왔나 봐요."
  "아……. 저도 이 녀석 팔러 온 거에요. 팔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롤만 찍어보고 있었어요."
  아…….
  그녀도 자신의 카메라를 녀석이라 부르고 있었다. 사진기를 팔러 나오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이런 거 물어봐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네? 뭔데요?"
  "저……. 카메라요, 왜 팔려고 하세요?"
  "아……."
  그녀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그럼 그쪽은 기타 왜 팔려고 하세요? 혹시……. 그만 두려구요?"
  그녀의 깊은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왜 기타를 팔려고 할까.
  "그걸…….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왠지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 같고……. 내 마음속 소리보다 주변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녀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언제까지 사진만 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그대로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활기가 가득 찬 놀이터에 그녀와 나만 정물화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냥 있지 말고……. 뭐라도 연주 해 봐요, 아까 듣기 좋았으니까."
  "아……. 그럴까요?"
  카피 해 둔 다른 밴드의 멋진 곡들을 연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곡을 들어줄 관객이 있으니까. 나는 성의껏 연주했다. 오래전 겨우 완성한 한 곡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 하고, 오래 들으면 지겨워질 것 같은 내 허접한 곡을. 정든 이 녀석을 어루만져가며.
  "찰칵!"
  사진기의 셔터음이 들려왔다. 그녀는 내 앞으로 일어서서는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기타 팔리거든, 기념사진 하라구요. 실례가 안된다면, 주소 적어주세요. 사진 보내드릴게요."
  "아……. 네, 고마워요."
  나는 웃어보였다. 고마운 여자다. 나의 첫 관객이자 마지막 관객은.
  나는 그녀 손바닥에 내 주소를 적었다. 가진 펜이 잘 지워지지 않는 유성 펜 뿐 이었는데 그녀는 개의치 말고 쓰라고 했다.
  "그럼……."
  그녀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 인사하고 뒤돌아서서 갔다. 그리고는 몇 걸음 가지 않아 뒤돌아서며 나를 불렀다.
  "저기요……."
  "네?"
  "정말 듣기 좋았어요. 연주. 왜 그만두는지 잘 모르겠으면……. 계속 해 봐요. 나도 사진 계속 해 볼 테니까……. 봄이 올 때 까지 만이라도 해봐요."
  "네?"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사진 꼭 보낼게요. 그럼……."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
  기타는 팔리지 않았다.
  얼마 뒤 그녀에게서 받아본 사진에 담긴 나와 녀석의 모습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학주형의 스튜디오로 가서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곡을 녹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간이들에게 들려주었고, 회무침을 사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천안까지 가지는 않았다. 소문이 퍼졌는지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나 있었다.
  몇 차례 합주를 하고, 시간이 지나 다시 학주형의 스튜디오로 가서 풀 밴드의 녹음을 했다.
  나는 사진에 적혀 있던 그녀의 주소로 녹음한 시디를 부쳤다. 제목은 이렇게 적었다.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












아 쪽팔려;;;


번안의 고충을 몇가지 적자면

우선 '보여주기'가 전제되있는 극본을 모든 메시지를 글로 전달해야 하는 소설로 바꾸는 작업이 엄청 고역이었음. 영상언어로는 한큐에 끝내버릴 수 있는 주인공의 성격 표현이나 세세한 묘사들이 문자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내가 훈련이 너무 안되어 한계가 있었다.

소설을 처음 쓰니 이거 이뭐병 캐난감
시점을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이 수업에서 비교적 잘 먹히는건 3인칭 관찰자 시점인 듯 한데, 표현의 어려움을 떠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3인칭 관찰자로 쓰면 분량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1인칭 주인공으로 쓰면 이 이야기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수필처럼 되어 버릴 것 같아서 난감했다. 뭐 결국엔 조낸 길 수필이 된듯.

이해할까들 몰라 아놔
나는 이 스토리를 거의 반년째 붙들고 우려먹고 있다. 그래봐야 영상 하나, 이제 소설 하나 만든거지만 그래도 우려먹은 탓에 머릿속에 정리가 너무 잘 되어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을 고려하가기 어렵다. 게다가 나의 경험이 뻥스럽게 많이 섞여있지만 그래도 내 경험인지라, 피드백이 한번도 없는 상태에서 남한테 보여줬다가는... 님 이거 뭔소리임? 될게 자명하다. 아 난 죽었다. 문창과 애들 완전 ㅎㄷㄷ

그래도 나 쫌 잘쓰는듯 -.- ㅋㅋㅋㅋ
밤 새고 미친듯...
2008/03/31 08:08 2008/03/3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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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sam 2008/04/03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삽입곡들은 참 좋았는데 말이지...

  2. 라윤 2008/04/04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평은 어떻게 나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