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사랑만큼, 운명적일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 또 있을까.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는 다소 유치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으나, 뭐 그리 까칠하게 굴 필요 있나. 유치함도 때로는 미덕이 되는 것이 사랑 아닌가.
작품은 무척 단순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야기 속에 있다. 숨겨놓은 메시지도 없고, 상징적 의미도 없다.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동감하고, 감동에 젖으면 된다. 때로는, 다소 유치하거나 재미없더라도 이렇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작품이 반갑다.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옮기고 있다. 물론 삭제되거나 추가되고 변형된 인물과 에피소드가 있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한 메시지의 변화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시금 이야기 하지만 작품 전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단순 명료한데다,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가장 큰 사건인 미오의 선택은 원작과 영화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원작이 주는 큰 재미중 하나인 잠자리 들기 전의 회상들이 많이 생략되거나 변경되었다는 점이 아쉽지만, 한정된 시간동안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 영화의 입장에서는 이점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같은 장면을 다쿠미의 입장과 미오의 입장에 따라 다른 방향에서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재미와 감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준다.
더불어 농부르 선생과 그의 개가 등장하지 않는 것 역시 아쉽다. 영화에서는 큰 존재감 없는 의사로 인물이 변형되어 등장하는데, 사실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인물이 바로 농부르 선생이다. 작가는 농부르 선생을 통해 작품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먼저, 그리고 나중에 등장하는 미오의 선택과는 반대의 선택을 한 자의 모습을 통해, 작품이 앞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예고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는 미오의 편지 전달이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타임캡슐과 일기, 동화책등의 장치를 통해 충분히 효과적으로 그의 역할을 대체한다. 이는 영화의 입장에서 시간을 아껴줌과 동시에, 타임캡슐과 일기라는 수단으로 두 인물의 젊은 시절 에피소드에 대한 재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원작은 소설로 출판되기 이전에 인터넷에 개재된 게시물이었다고 한다. 사용되는 매체의 성격이 이야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네트워크의 주요한 속성 중 하나는 속도다. 이제 이야기도, 얼마나 빠르고 쉽게 전달되는가에 따라 흥행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 이야기가 지니는 메시지도 그만큼 쉬워져야 하고 빨라져야 한다. 네트워크의 사용자는 절대로 책 읽듯 모니터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다만 스크롤 할 뿐이다. 스크롤 하는 검지의 경쾌한 움직임처럼, 이제는 메시지의 무게가 경쾌해져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과 네트워크의 대화. 이런 강의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고...




이 영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지. 후후후.
업데좀 해라 이게 뭐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