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이야기

days 2009/03/17 03:06
내게는 다섯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우리는 둘 다 대학생인데, 다니는 학교가 집에서 멀어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서 함께 자취를 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식사를 밖에서 해결한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저녁시간이 지나서야 작은 방으로 돌아오니 대개는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동생이 스무살이 되어 대학에 합격하고 나와 함께 살게 되기 전 까지는, 혼자 살수록 먹는것에 신경써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밥을 잘 지어 먹었다

하지만 동생이 학교 생활에 바빠 매일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다 보니, 어느 새 함께 지내는 가족이 있는데도 혼자 밥을 지어 먹는 일이 되려 쓸쓸해졌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편이다

하지만 집에 있다 보면, 특히나 밤 늦게까지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고 있다 보면 출출해지기 마련이어서 요깃거리를 장만 해 두게 된다. 자취생의 요깃거리라면, 역시나 라면이다. 많이 먹지는 않아 다섯개들이 한 봉지를 사 두면 둘이서 열흘정도 두고 먹는다

오늘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에 라면이 떨어진 것이 기억나 가게에 들렀다. 나는 좋아하는 라면이 있어서 늘 가게에서 라면을 고를때면 아무 고민 없이 집어드는 편이다. 그런데 문득 동생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내가 사둔 라면을 끓여 먹으며 물은 적이 있다. 형은 왜 늘 같은 라면만 사두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맛이 없느냐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단다. 그럼 어떤 라면을 좋아하느냐 물었더니 동생은 몇가지를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늘 고민없이 집어들던 라면을 놔두고, 동생이 맛좋다 했던 라면을 집어들었다. 요즘 동생은 휴학을 하고 입대 날짜를 기다리는 중이어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라면도 조금은 더 자주 먹게 되어 다섯개들이 봉지 두개를 샀다. 다른종류였지만 둘 다 동생이 이야기 했던 것으로 골랐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어 먹었다. 동생은 오늘도 늦게 들어올 모양이었다. 조금은 쓸쓸했다. 하지만 동생은 곧 입대를 하니 다시 혼자 밥 지어 먹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밥을 먹고 한참을 쉬고 있는데 동생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도 들리는걸 보니 무언가 사온 모양이었다

형도 라면 사뒀네. 하며 동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라면이 떨어졌길래 자기도 사왔다고 했다. 덕분에 집에 전에 없이 라면이 많아졌다. 동생이 사온 것들을 찬장에 정리해 두려고 부엌에 가 비닐봉지를 보니 동생도 다섯개들이 라면 두 봉지를 사왔다. 하나는 동생이 좋아한다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우리 형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어릴적에야 워낙 어린것들이니 티격태격 하며 지냈지만 둘 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다툴 일도 없었다. 형제 사이가 냉랭한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의 좋게 형님 좋고 아우 좋고 어야듸야 하며 지낸 것도 아니다. 늘상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소중한 동생이지만 굳이 그 이야기 꺼내다가 해 줄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런데 노랗고 커다란 비닐 봉지 안에 가만히 들은 라면 두 봉지를 보니, 괜시리 울컥해진다. 무슨 생각으로 집어든 것인지 물어볼 생각은 없으나, 형은 동생의 은근한 사랑을 느꼈다. 라면 봉지 두 놈이 가만히 붙어있는것이 우리 형제를 보는것 같았다. 지금은 라면 끓여 먹으며 요기하고 사는, 값싼 라면같은 형제지만-

나중에는 형이 우동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회도 사주고, 초밥도 사주고 해야지. 맛 좋다고 소문난 곳에 어머니랑 동생이랑 데려다가 말이지
2009/03/17 03:06 2009/03/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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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범스 2009/03/17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우~ 좋은생각에서나 읽을법한 글인걸... 눈물이 글썽~

  2. Ssam 2009/03/17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동생이 우동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회도 사주고, 초밥도 사줬으면 좋겠다...

    • shiver 2009/03/17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난 형이 우동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회도 사주고, 초밥도 사줬으면 좋겠다...

  3. werther 2009/03/17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동생 바꾸자!?-.-

  4. 머쉬 2009/03/17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소주와 꼼장어를 사들고 들어오던 내 동생이 생각나는구나 후훗~

  5. 라윤 2009/03/17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통 자취생들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들 하지만,

    시작할때부터 동기놈이랑 살다보니 이젠 혼자이면 오히려 허전하더구만-_-

  6. 박쥐 2009/03/18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쌤이 우동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회도 사주고, 초밥도 사줬으면 좋겠다...

    암튼 모처럼 훈훈하네~

    대개 니랑 나랑 맥주마시고 있고 충휘 와우하던 내 머릿속 그림과는 다르게ㅋㅋㅋ

  7. 민상k 2009/03/19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으니,
    우동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회도 사주고, 초밥도 사 줄 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
    훈훈하니 좋구나.